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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혼자 부탄] Vol 6. 부탄 4일차 (부탄에서 제일 좋았던 붐드라 트렉 1박 2일 트레킹 시작!)해외여행/여자 혼자 부탄 2023. 2. 26. 12:00
여행 기간: 2017.10.21 ~ 2017.10.29 (8박 9일)
어느덧 부탄 4일차! 부탄 여행의 절반이 지났다. 그리고 이 날은 개인적으로 부탄 여행 중 가장 좋았던 1박 2일 트레킹을 시작한 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부탄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혹은 "평화로운 불교의 나라" 정도로 생각하지만 부탄은 히말라야 산중에 있는 네팔 못지 않은 트레킹의 성지이다. (심지어 서양인들 중에서는 네팔을 가고 싶었는데 안나 푸르나는 아직 엄두가 안 나서 부탄으로 왔다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한국의 등산 인구를 생각해봤을 때, 개인적으로는 부탄이 차라리 이 점을 강조해서 마케팅을 하면 한국인들에게 더 인기있는 관광지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당일치기로 좋은 코스는 물론 n박 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까지 난이도 별로 좋은 트렉이 엄청 많다.
나는 평범한 체력에 보통 한국에서도 등산 가면 남들 1시간 걸릴걸 2시간에 가는 등산 고자이지만 부탄에서 붐드라 트레킹을 하면서 n박 트레킹의 매력에 푹 빠졌고, 이후에 뉴질랜드의 밀포드 트렉, 칠레의 토레스 델 파이네 (W 트렉)까지 다양한 코스에 도전하게 되었다.
(트레일 시작점. 기운 넘침!) 어제 탱고 곰파부터 느낀건데 부탄의 등산길(?)은 뭔가 한국처럼 거창하게 등산로 입구가 있거나 하지 않고, 그냥... 뭐랄까... 드라이버가 어느 지점에 버려(?)주면 거기서부터 영차영차 올라가는 그런 느낌이었다. 하다못해 시작점에 표지판이나 이정표라도 있을 법 한데 그런것도 딱히 없다. (중간에는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구글로 뒤늦게 공부해보니 트레일 시작점은 파로의 상첸 초코르 수도원(Sangchen Choekhor Monastery)이라고 한다. 보통 첫날은 3-4시간에 걸쳐 붐드라 캠프까지 가고, 여기서 원하는 사람은 왕복 2-3시간 정도이 더 소요되는 붐드라 트렉의 고점, Sky Burial까지도 다녀올 수 있다. 나랑 상게는 10시쯤 등산을 시작했으니, 남들보다 느린 걸 감안해도 캠프엔 3~4시면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붐드라 트렉은 난이도가 꽤 낮은 편이다. 다만, 해발 3,800m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고산병 증세가 생길 수 있다. 3,800m라는 숫자가 얼핏 보기엔 겁나기도 하지만, 사실 3,800m를 고도 0m부터 올라가는게 아니라 산 중턱쯤 부터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생각해보면 파로 공항이 이미 해발 2,000m 이상에 있다. 혹시 몰라서 아침에 부탄 약국에서 고산병을 대비할 약을 샀는데, 이분들... 고산병이 뭔지 모르시는듯 "altitude sickness medicine"이라고 하니까 전혀 알아듣지 못하셨다. 타이레놀이 고산병에 괜찮다는 얘기를 들었던게 기억나서, 그럼 타이레놀을 달라고 했는데 타이레놀 브랜드는 없다고 했고 그냥 부탄제 파라세타몰을 주셨다. 비슷한 성분이니 그냥 샀다.
정 힘들면 말에게 배낭을 실어서 보내고 몸은 가볍게 갈 수도 있다. 짐을 보내는 값은 딱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마부에게 팁을 주면 된다. 말은 캠프 물자와 도시락, 여분의 물 등을 옮겨주는 역할이라, 이러나 저러나 이 길을 오가긴 한다. 개인적으론 배낭을 굳이 맡길 정도로 힘들진 않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하늘이 맑고 날씨가 너무 좋았다. 공기가 너무 깨끗해서 폐가 정화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부탄 + 가을 + 산 = 진리이다. 너무 덥지도 않고, 너무 춥지도 않고... (물론 밤엔 엄청 춥다)
맑은 공기를 만끽하며 산길을 열심히 걸었다. 오늘은 상게도 처음으로 전통 복장이 아닌 운동복을 입었다. 근데 충격적인 건... 옷은 운동복인데 신발은 정장구두였다!! 왜 신발은 운동화나 등산화 안 신었냐고 물어보니, 내일 탁상곰파에 갈 때는 전통복장에 구두를 신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갈아신을 신발을 가져오기 귀찮아서 그냥 구두로 왔다고... 난이도가 높진 않지만 그래도 산길이긴 한데 저렇게 오다니 정말 리스펙이다ㅎㅎㅎ 젊음이 좋구나아...
(그래봤자 한살차이...)시야가 트인 곳에서는 파로 계곡이 내려다보였다.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물도 마시고 사진도 찍었다. 고산병에 가장 좋은 건 충분한 수분 섭취라고 한다. 나는 굳이 고산병 때문이 아니라도, 그냥 물을 마시고 싶으면 고민 없이 마셨는데, 나중에 캠프에서 다른 등산객들과 대화해보니 여자들 중엔 화장실 때문에 목이 말라도 참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이건 고산병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실제로 그분들 다 고산병 때문에 고통받았다) 나는 그냥 마시고 싶을 때 맘껏 마시고, 필요하면 나무 뒤에 숨어서 소변도 봤다... (캠프까지 올라가면 텐트로 가려진 푸세식 화장실도 있다)
얼마 안 간 것 같은데 또 다른 사찰이 나왔다. 여기는 Choechoetse Lhakhang라고 하는데... 영문 표기를 봐도 어떻게 읽는지 감이 안잡힌다. 이곳은 붐드라 캠프까지 절반 정도의 지점이기도 하고, 점심식사 스팟이기도 했다. 여기서 밥을 먹으면 식사 후 사찰 화장실을 쓸 수 있어서 등산객들 배려 차원에서 여기서 밥을 먹이시는 것 같다.
상게를 따라 사찰 근처 평지로 가보니 이미 점심식사를 싣고온 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등산 초반에 봤던 3마리가 끝인 줄 알았는데 말이 점점 더 많이 왔다. 캠프에 등산객은 그렇게 많진 않았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마부들도 있고 캠프의 스탭들도 있고 해서 총원을 고려해보면 20인분 이상의 음식과 물을 싣고 오긴 해야하는 것 같다.
산에선 뭘 먹어도 꿀맛이다. 관광객 식당 음식 같은 거 말고 부탄 음식을 줘서 너무 좋았다. 10월 말이다보니 안 움직이고 가만히 있으면 조금 쌀쌀할 수도 있다며 따뜻한 허브차도 주셨다. 든든하게 먹고 다시 산길에 올랐다.
밥 먹었던 사원까지의 길이 다소 가파른 (관악산에 비하면 껌...) 편이었다면, 밥 먹은 이후의 길은 사실 꽤 걸을만 했다. 오후가 되니 햇살도 더 따뜻해졌다. 산속 깊이 들어오면서 풍경도 더 아름다워졌다. 가을이라 나무들이 알록달록 너무 예뻤다. 내가 나무 사진을 찍고 있으니 상게가 신기한 걸 보여주겠다며 나무를 슥슥 타고 올라갔다. 구두 신고 산 타는 것도 신기한데, 구두 신고 나무도 타다니... 정말 어나더레벨이었다.
들판에 이름 모를 파란 꽃이 잔뜩 피어있었다. 꽃 사진을 열심히 찍어보았다. 여기 너무 햇살이 잘 들어오고, 운동 후에 밥을 먹었더니 식곤증이 오기도 하고, 잔디도 엄청 푹신해서 상게한테 장난으로 "여기서 한숨 잤으면 좋겠다~!" 이랬더니 자라고 해서 진짜 낮잠을 잤다. 잠이 들기 전까지 엄청나게 많은 등산객에게 추월당했(?)지만, 순간을 만끽하고 싶어서 "Sky Burial 안가면 되지 뭐~"하는 마음으로 그냥 잤다.
한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서 또 산길을 걸었다. 다르촉과 룽다가 바람에 펄럭이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룽다 사이를 막 뛰는 오글거리는 영상들도 찍었는데 차마 못 올리겠다ㅎㅎ
조금 더 걸으니 텐트가 나와서 이제 도착한건가 하고 신났는데 우리 텐트가 아니라고 했다. 우리의 캠프는 붐드라 수도원 바로 아래 있는 텐트촌(?)이었다. 하지만 드디어 시야에 들어왔으니 힘내서 더 열심히 걸었다. 오후 4시반쯤 캠프에 도착했다. 10시에 출발했으니 6시간 반이 걸린 셈인데, 중간에 점심식사 1시간에 낮잠 1시간을 빼면 4시간 정도 걸린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목적지에 도착했는데도 고산병 증세 없이 팔팔했다. 이것만으로도 나름 뿌듯하게 느껴졌다.
캠프에 도착하니 캠프 스탭분들이 친절하게 맞아주셨다. 붐드라 수도원을 배경으로 U자형으로 텐트가 세워진 캠프는 정말 아름다웠다. 짐을 싣고 온 말들이 돌아다녀서 그런지, 약간 몽골 게르촌 느낌이 나기도 했다. 개인 텐트들이 있고, 공용텐트로 식당텐트와 화장실 텐트가 있다. 나도 내 텐트를 배정받아서 들어가 보았다. 매트+침낭 같은데서 잘 줄 알았는데, 들어가보니 텐트 안에 꽤 큰 침대가 들어있어서 엄청 놀랐다.
캠프 스탭분들이 고산병 예방에 좋다며 생강차를 주셨다. 이 생강차는 부탄에 와서 먹은 모든 음료와 음식 중에 제일 맛있었다ㅠㅠ 아마 영원히 이 맛을 못 잊을 것 같기도 하고, 똑같은 맛을 느낄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차와 함께 먹은 쿠키와 비스킷, 팝콘도 맛있었다.
평화롭게 풀을 뜯는 말들. 쓰다듬어줘도 아무 관심이 없다. 내가 중간에 베짱이처럼 자는 동안 나를 앞질러간 다른 등산객들 중 일부는 Sky Burial에 올라갔고, 일부는 텐트에서 쉬고 있었다. 고산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도 있었다. 늦은 오후 시간대 캠프 분위기가 엄청 좋아서 Sky Burial에 안 간것이 후회되진 않았다
(스포일러: 내일 오전에 결국 어쩌다 보니 감...)해질 무렵이 되니 구름 사이로 퍼져나오는 햇빛이 엄청 장관이었다. 애니메이션 같은데서나 볼 법한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마침 해지기 전 Sky Burial에서 돌아온 사람들까지 다들 나와서 일몰을 구경했다. 해가 지니까 캠프가 엄청 추웠다. 영하까진 아니어도 초겨울 날씨는 되는 정도이다. 나는 엄청 추울 줄 알고 두꺼운 패딩이랑 플리스를 둘 다 챙겨갔는데, 사실 경량패딩 + 플리스 정도면 충분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 배낭의 70%가 그놈의 패딩이었다...) 두꺼운 패딩을 입으니까 당연히 안 추워서, 플리스는 얇은 자켓만 챙겨온 상게한테 입으라고 줬다.
일몰을 구경하고 나서 다른 등산객, 가이드들과 함께 다 같이 식당 텐트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밥은 너무 맛있었는데 뭔가 국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 혹시 부탄 트레킹을 오게 된다면 오뎅국물 티백이나 컵라면을 가져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컵라면 아프리카 돼지열병 때문에 어딜 가나 라면 반입이 좀 까다롭긴 하겠지만 ㅜㅜ) 부탄 사람들도 매운 음식을 잘 먹어서 컵라면 충분히 잘 먹을 것 같다. 한국 과자 같은걸 가져와서 나눠먹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 중에는 자연스럽게 영어 그룹과 비영어 (유럽권) 그룹으로 나뉘었는데, 나는 영어그룹이다보니 뉴질랜드에서 온 젊은 여자 3명이랑 미국에서 온 중년 부부와 함께 앉게 되었다. 여기 오기 전에 부탄에서 어디어디 가봤는지, 원래 나라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등 얘기를 하면서 밥을 먹었다. 근데 다들 고산병 때문에 많이 못 먹고 힘들어하다가 일찍 쉬어야겠다며 들어갔다. 나는 고산병 증세가 아예 없어서 아침에 구매한 파라세타몰을 전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뉴질랜드 여자들이 일찍 들어가고 나서 그분들의 가이드님이 심심했는지 나랑 상게쪽으로 와서 수다를 떨게 되었는데,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자기가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 되기 전)의 부탄 가이드였다며 같이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주 정도 머물면서 동부탄까지 여행하고 트레킹도 다양하게 하고 가신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으로 돌아가서 등산화를 소포로 보내줬다며 엄청 뿌듯하게 자랑을 하셨다. 상게보다 약간 나이대 있으신 가이드님 같았는데 엄청 순박하고 귀여우셨다.
저녁 9시 정도 되니 등산객들은 다 각자 텐트로 가고 어쩌다 보니 나랑 상게랑 각 그룹의 가이드들만 남게 되었다. "내가 내 텐트로 가야 식당 텐트 문 닫을 수 있는 거야?" 하고 물어보니 그런건 아니라고 어차피 가이드 텐트가 추워서 자기 전까진 식당 텐트에서 다 같이 불 쬐고 놀거라고 해서 나도 그냥 계속 남아서 상게와 남의 가이드들과 수다를 떨었다. 트럼프 카드라도 가져왔으면 게임을 하고 놀았을텐데 없어서 그냥 수다만 주구장창 떨다가, 나와서 별 구경도 조금 하다가 텐트로 자러갔다. 엄청 낭만적인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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